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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강론

(독서: 신명 30,15-20 / 복음: 루카 9,22-25)

 

 

20200227(), 박준 야고보 신부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신명 30,20)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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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박해시대 혹은 한국전쟁의 시대를 방불케 하는 이번 사태에도 굴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신앙을 굳건히 하고 계신 마두동 성당 교우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인간 육체의 나약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 사태로 인해 새 사제인 저 또한, 개인의 열성과 능력에 도취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께 의탁해야 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나의 나약함을 하느님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분의 자비에 의탁함으로써 참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에 대해 묵상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를 때에 비로소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 말은 예수님 시대의 군중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말이었을 것입니다.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십자가는 당시 형벌의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군중들은 우리와 달리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곧 죄와 죽음을 떠올리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들처럼 부활의 영광을 위해 이겨 내야할 내면의 아픔이나 사회적 부조리와 같은 상징적인 의미들을 떠올리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스스로도 그들이 이러한 역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혼란스럽게 할 이러한 역설적인 말씀을 왜 하신 것일까요? 또한 오늘날의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가 일차적으로 의미하는 죄와 죽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목을 뻣뻣하게 새우고 자신의 완전함을 자랑하는 오만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십자가의 형벌을 자처할 만큼 자신의 죄와 불완전함을 고백하는 겸손. 이것이 예수님께서 당시의 군중들과 오늘날의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라 느껴집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이러한 바람에서 아버지의 자비를 향한 아드님의 무한한 신뢰가 함께 느껴집니다. 죽음의 형벌을 자처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생명을 바랄 수 있는 마음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의 말씀처럼 하느님은 우리의 생명 자체이시며 인간의 죽음보다는 생명을 그 누구보다 바라시는 분이라는 것을 예수님도 믿으셨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죽음의 형벌을 스스로 지고 간다 하여도, 만일 그것이 스스로의 나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 앞에 보이고자 하는 겸손의 마음이라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죽음이 아닌 새로운 생명을 주실 것임을 예수님은 믿으셨던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포함한 모든 병의 치료는 스스로가 아프다는 것을 인식하고 의사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병을 인정하면 마치 나의 사회적 지위가 흔들리고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진정 목숨을 구하는 길은 스스로 환자임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를 치료하고자 하는 의사의 선한 마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우리들 또한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하느님 자비에 대한 믿음과 스스로를 죄인으로 자처하는 겸손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비록 코로나19의 사태로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이러한 마음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오히려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고요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다시금 하느님 앞에 나아갈 날을 고대하며 오늘 하루도 하느님 자비에 의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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