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다음 토요일 강론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루카 5,28)
2020년 2월 29일, 김동희 모세 신부
가급적 밖에 나가지 않습니다. 차 한 잔을 들고 가끔 창문을 통해 마두사거리 너머의 풍경들을 내다봅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흐렸습니다. 암센터 인근의 타워크레인은 여전히 건장한 어깨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고봉산은 송전탑을 도둑맞은 채 시무룩이 앉아 있었지요.
“타인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기대하시는 모습으로 바라보라!”
한마음수련원에서 교육과 피정을 전담하는 사제로 일할 때였습니다. 청년성서모임 연수 고해성사를 주러 갔더니 벽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넘어서 “하느님께서 기대하시는 모습으로 바라보라!”는 말은 충격적이었고, 즉시 저의 뇌리에 새겨졌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에게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어떤 기대일까요? 오늘 복음 환호송은 이야기합니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 하느님은 우리가 죽은 듯이 살기를 원하지 않고 생기 있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내 안에서, 그리고 나와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관통해 지나가는 바람이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옷깃을 휘날리며 자유롭고 신명나게 살기를 바라시지요. 사람들 사이를 기쁘게 활보하고, 수다스럽게 사랑스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당신이 만드신 세상을 만끽하고 살기를 꿈꾸시지요. 우리가 방구석의 화분이 아닌, 당신 바람의 아들딸로 살기를 바라시며 자동차처럼 질주하고 계시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나 봅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 있던 레위(마태오)라는 이름의 세리를 부르십니다. “(그렇게 앉아 있지만 말고) 나를 따라라.” 그 바람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고 합니다. 대학교 4학년 시절, 제가 사제성소를 결정하게 된 계기도 바로 그랬습니다. 사제의 길을 생각하며 평일 저녁미사를 드리는 중에 이 레위 이야기가 그만 제 안에 쑥 들어와 버렸습니다. 레위처럼 저 역시 그 소리에 단순하게 응답했고요.
봄기운과 더불어 찾아오는 사순시기는 어쩌면 우리를 불러 세우는 따스한 바람의 부름을 듣는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개를 돌려, 몸을 돌려 이렇게 물어야겠지요. “저를 부르셨나요?” 신자 여러분, 모두 꼭 건강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