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간 수요일 강론
회개와 화해는 두고두고 계속해야 할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2020년 3월 4일, 김동희 모세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올해 사순시기 담화에서 ‘참으로 생생하고, 진실하고, 구체적인 주님의 사랑’에로 우리를 초대하는 복음 선포를 믿는 모든 이는 ‘나의 삶이 나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거짓을 멀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삶이 나의 판단과 계획, 그리고 의지에 달려 있다는 말은 달콤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이 거짓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부조리의 심연으로 끌려 들어가 이미 이 지상에서 지옥을 경험”하게 될 터인데, “안타깝게도 개인과 공동체가 경험해 온 온갖 비극적 사건들이 이를 입증해”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판단에 맞지 않고,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삶과 세상이 못마땅하고 부조리하다며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차 소리 지르는 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제 강론에서 이규섭 스테파노 신부님이 상기시켜주신 대로, 우리 본당 외벽의 현수막에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기도로 청하십시오.”라는 말씀이 쓰여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도 있지만, 기회가 맞지 않고 또 힘에 부쳐 할 수 없는 일들도 적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실패한 자신을 다독이고, 하느님께 기도로써 의지하고 이웃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된 회개는 또한 관계의 개선(화해)을 뜻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 등장하는 ‘요나’라는 인물을 살펴볼까요. 요나가 주님의 말씀대로 니네베로 걸어 들어가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고 선포하자 니네베 사람들은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단식하고 기도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애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악한 길에서 돌아서자(회개) 하느님께서는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십니다.
얼핏 보면 요나서는 니네베 사람들을 회개에로 이끄는 예언자 요나의 이야기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못지않게 회개해야 할 이가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에게는 악한 길에 들어서 있던 니네베 사람들만이 아니라 하느님도 모두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요나는 자기 생각과 판단을 바탕으로 하느님께 핑계를 댈 수 있는 논리, 그리고 저항할 만한 배짱을 가진 사람이었지요. 그런 그가 하느님을 피해 도망쳤다가 뉘우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그를 끝까지 붙들었고, 또 요나가 고래 뱃속에서 하느님께 기도로써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표징을 요구하는 당대의 사람들을 향해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그러면서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와 니네베 사람들에게 드러난 표징은 무엇보다 ‘회개와 화해’입니다. 회개와 화해 없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야기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누군가 회개하고 화해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성령과 그분의 은사가 가장 분명하게 작용한 표지라 하겠습니다.
회개와 화해는 두고두고 계속해야 할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니네베 사람들의 일이며, 또한 요나 예언자의 할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악습들만이 아니라 오만한 핑계와 변명들도 꺾일 수 있도록 주님의 자비와 도우심을 청합니다.
모두 꼭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