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6 사순 제1주간 금요일 강론 / 박준 야고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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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간 금요일]
2020년 03월 6일(금)
박준 야고보 신부
독서: 에제 18,21-28 / 복음: 마태 5,20ㄴ-26
+ 찬미예수님
‘새 학기’, ‘봄’, ‘새싹’, ‘첫 본당’, ‘사순’ 그리고 ‘부활’. 3월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모두 ‘새로움’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좀 더 생각해 보면 ‘생명’과도 연결됩니다. 이러한 3월이 시작된지 엿새나 지났습니다. 이제는 바이러스 자체보다 지속되는 불안과 침체되는 경제 등으로 인해 우울하고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고 계시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핵심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있듯이 다시 한 번 힘을 내봅니다. 특별히 오늘의 독서와 복음을 통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을 느껴봅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저에게 매우 어려운 과제를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잘 못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첫 번째는 제게 원망을 품고 있는 형제를 떠올리는 일입니다. ‘내가 미워하고 있는 형제’를 찾는 것은 쉽습니다. 찾아내려고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러나 ‘나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형제’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깊은 성찰을 통해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성찰을 해 보았습니다. 역시나 어려웠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최근 그 사람과의 대화나 감정의 교류를 세심하게 살피는 일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 어려운 일은 내 손에 들고 있는 예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는 일입니다. 이것을 사제가 바치는 미사로 생각해 볼 때, 저는 형제와 화해하는 일 보다 당장 하느님께 봉헌하는 미사를 더 중요하고 우선되는 일로 여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웃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제사를 바치는 나’, 즉 나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예물을 바치기에 나 스스로 부족한 사람임을, 누군가의 원망을 받고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