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8 사순 제2주일 강론 / 김동희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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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일 강론
십자가가 없는 세상은 분명 지옥일 것입니다.
2020년 3월 8일, 김동희 모세 신부
찬미 예수님!
평안하십니까?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중단된 이후 맞이하는 두 번째 주일입니다. 주일학교 교사 시절, 심지어 신학생 때에도 가끔은 “주일 미사 안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라 하면 가기 싫고, 오지 마라 하면 가고 싶은 것을 보면 우리네 맘보가 참 신비롭기만 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우리들의 참여로 코로나 19 확진자의 급증세가 조금은 누그러진 듯해 참으로 다행입니다.
오늘 복음의 타볼산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는 만화영화를 한 편 만들어도 좋을 만큼 여러 가지 신기한 요소들을 두루 담고 있습니다. 자 영화 한 편 감상하실까요. 모두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상상의 눈을 떠주시면 좋겠습니다. 필름 돌아갑니다.
(1) 예수님께서 3명의 제자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으로 오르고 계십니다. 산은 야트막하다가도 이내 가팔라지고, 풀과 나무와 그리 크지 않은 바위가 어우러진 산길 사이로 바람이 불어옵니다. 아이쿠, 벌써 정상 무렵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자 보이시죠? 저기 한 편에 조금 평평한 땅, 저희들이 보기에도 기도하기에 안성맞춤인 그곳에 예수님과 제자들도 앉아 기도에 잠깁니다.
(2) “나는 이제 곧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넘겨져 죽음을 당할 것이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즉시 따라나선 산행 길, 막상 기도하기 위해 자리는 잡고 앉았지만 제자들은 모두 맘 편히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까닭 모를 불안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릅니다. 예수님 홀로 기도 속으로 기도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가십니다.
(3) 순간 예수님의 옷과 얼굴에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의 밝고 강렬한 빛 사이로 사람인지 천사인지도 알 수 없는 두 분의 모습이 보입니다. 때로는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또 때로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합니다. 서서히 빛이 약해지며 두 분이 떠나려 할 때 제자들은 그 두 분이 누구신지 깨닫습니다. “아, 옛날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이야기로만 듣던 모세와 엘리야구나.”
(4) 감격에 겨운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께 말합니다. “선생님, 저희가 계속 여기에서 지내면 어떻겠습니까?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십니다. 다만 산 밑을 굽어보십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산 밑에 남겨져 있는 다른 제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느 틈엔가 구름이 밀려와 제자들을 덮습니다. 구름과 더불어 찾아오는 한없는 두려움에 제자들은 그 옛날 모세가 주님의 산에서 그러했듯 말없이 마음의 신발을 벗습니다. 크고 부드러운 음성이 종소리처럼 들려옵니다.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예수님의 찬란한 영광이 드러났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였다는 것은 예수님 역시 그들과 같은 길을 헤쳐가리라는 것을 예감케 합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무지하고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품으로 되돌리기 위해 갖은 고난을 겪은 이들입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사랑의 길에는 이처럼 고난의 여정이 필수적으로 자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릇 모든 일에 십자가가 없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깨닫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하늘의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것은 바로 수난예고에 앞서 주님께서 들려주셨던 두 가지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길에는 수고 수난하는 십자가가 ‘반드시’ 뒤따릅니다. 삶이 편안해지면서 어느새 수고스런 일은 피하고, 고통스런 관계는 쉽게 단절하고 피해버리려 합니다. 하지만 십자가가 없는 세상은 분명 지옥일 것입니다. ‘십자가’라고 쓰고 ‘사랑’으로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고통 받는 이들, 이들을 치료하고 돌보기 위해 애쓰는 이들, 감염병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수고의 십자가를 마다 않는 이들을 위해 오늘도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이사 5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