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5 사순 제3주일 강론 / 이규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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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사순 제3주일 강론
2020년 3월 15일, 이규섭 스테파노 신부
찬미 예수님!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과 함께함을 묵상하는 데에 풍부한 재료와 그 길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바빌론 유배 이후에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들의 피가 섞인 민족이라 하여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에게 정복당하고 그곳에 여기저기에서 이주 온 사람들과 살게 되면서 혼혈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을 믿고 받아들였지만 가리짐 산에 자기들만의 성전을 건립하였습니다. 서로 상종하지 않는 분위기는 기원전 128년경에 유다인들이 사마리아 수도 시켐을 정복하면서 더욱 고조되었고, 예수님시대에 이르면 아예 사마리아인들을 상종하지 못할 이방인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다는 것도 그 배경을 깔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지역에서 죄인인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친교를 이루십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라는 말로 시작된 이 야곱의 우물가에서의 대화는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라는 신앙고백으로 사마리아 지역의 최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보면 나무가 거의 없고 광야이며 물이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탈출기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아 40년을 돌아다니게 됩니다. 땅에서 어떻게 젖과 꿀이 흐르겠습니까? 바로 풍요의 상징입니다. 물이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기 때문에 탈출기의 여정은 바로 물을 찾는 여정입니다. 그 물은 요르단 강에서 찾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요르단 강을 가보면 개천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강은 갈릴래아 호수를 채우고도 남습니다. 바로 이 강이 생명의 강이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들어줍니다. 탈출기의 여정은 물을 찾는 여정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물을 가지고 영적인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물이 귀한 지역에서 결국 물은 세상적인 표상입니다. 물은 돈이 되고 권력도 되고 명예도 됩니다. 이상적인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갈증을 풀어줄 물을 이야기하고 있고 예수님은 그 우물물을 통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샘솟는 물을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은 물을 통해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서 영원한 것을 알려주십니다. 마시고 나면 목마를 물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먹고 나서 배고플 양식이 아니라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4,32)”을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세상의 것을 찾다보니 예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누가 알려줘서 믿지 않습니다. 물론 전교라는 입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있지만 이미 사람의 존재가 하느님으로부터 만들어졌고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하느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냥 전교라고 하는 불씨만 던져진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문제는 바로 그분이 주님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머리가 커져있어서 가르쳐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경험한 사실입니다. 마음을 흔들어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흔들어 놓았고 사마리아 공동체를 말씀으로 흔들어 놓았습니다.
우물물로 시작한 대화를 통해서 사마리아 여인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물을 마셨고 사람들에게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라고 알립니다. 우리도 우리의 갈증 때문에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면서 그 의지할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을 찾도록 만들어졌고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래아로부터 시작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빠른 길은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길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을 가는 가장 빠른 길에 사마리아가 있다는 것, 가장 하느님답지 않은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사마리아를 그리스도 공동체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가능성과 희망을 줍니다.
여러 가지로 힘든 시절입니다. 질병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습니다. 힘을 냅시다. 서로 위로하고 배려합시다. 사마리아 여인을 받아주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아버지의 집으로 이끌어줍니다. 우리의 목마른 신앙으로 주님을 찾아가는 사순시기를 지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