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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화요일 강론

 

 

2020324, 김동희 모이세 신부

 

 

비참과 자비의 만남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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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믿음에 대해 말했었습니다. 이방인 왕실 관리는 막연한 호기심과 기대가 아니라 아들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 절박함 가운데 예수님께 의탁하여 아들의 생명을 되찾았습니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절박함 가운데 이루어진 모든 만남이 믿음에로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벳자타 못가의 병자 치유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양 문곁에는 주랑이 다섯 채나 딸린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할 때 처음으로 못에 들어가는 이는 어떤 질병에 걸렸더라도 건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곳에 가셔서 38년이나 앓는 사람에게 물으십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그러자 그가 대답합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예기치도 않은 때에 못의 물이 움직일 때 그곳에 처음으로 내려가는 사람에게는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는 벳자타, 언뜻 보면 은총의 자리인 것 같지만 복음의 설명과 이 대화를 듣고 가만히 그 장면을 상상해보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곳입니다. 여러 종류의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일그러진 모습, 돌봄을 받지 못하는 병자들의 몸에서 피어나는 역한 냄새와 신음소리가 일상인 곳, 게다가 물이 움직이는 날이면 선착순 1!’이라는 구호에 맞춰 서로 물에 먼저 들어가기 위해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 들어가는 병자들의 행렬을 생각하면 저도 몰래 터져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맙소사!’ 은총과 치유의 장소가 아닌,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아비규환의 전쟁터가 따로 없습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라는 병자의 말대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중증의 병자들에게는 처절한 절망을 체험하는 곳이 벳자타 못가입니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는 표현으로 미루어보면 그는 아마도 병자들 가운데 가장 오래 앓던 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를 찾아가 낫고 싶으냐?’ 물으신 것입니다. 안타까운 절망을 거듭 체험하면서도 벳자타 못가를 떠나지 못했던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8) 살았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닮았습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가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은총과 기적을 체험하고도 믿음의 길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날은 안식일이었고, 그가 들것을 들고 걸었다 해서 유다인들은 그를 나무라며 누가 그렇게 했는지 묻습니다. 후에 예수님이 그를 다시 만나 ,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하고 이르셨는데도 그는 은혜를 저버린 채 예수님을 유다인들에게 고발합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그런 일을 했다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비참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들 세상과 너무나 흡사한 일등주의의 비정한 벳자타 못가, 배은망덕한 사람, 관습과 규정에 사로잡힌 완고한 이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을 비참과 자비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풀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제목은 왕실 관리 아들의 치유 및 베짜타 못가의 병자 치유이야기에도 두루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은총을 체험하고도 그 커다란 은총의 선물에 도취되어버리면 그 은총을 내개 베풀어 준 이와 그의 마음은 쉬이 잊히고 만다는 것입니다. 38년간이나 앓던 이는 몸은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마음의 가난함과 옹색함은 벗지 못하였습니다. 그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비참함이 더욱 비참함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비참과 자비의 만남은 계속됩니다. 은총을 뒤집어쓰고도 여전히 우리는 하느님 자비와 은총에 의탁하여 거룩한 부활의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우리 말 묵주기도 구원송’(구원을 비는 기도)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라틴어와 이태리어 기도문을 바탕으로 직역하면 기도문 본래의 의미가 좀 더 명확해집니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모든 영혼을 돌보시되

 

 

당신 자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돌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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