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9 주님 만찬 성목요일 강론 / 이규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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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찬 성목요일 강론
2020년 4월 9일, 이규섭 스테파노 신부
주님 만찬 성목요일은 첫 미사가 거행된 날입니다.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시며 받아먹고 마시라고 하시고, 기억하고 행하라고 하신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저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앞두시고 제자들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수난과 죽음을 앞두시고 제자들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싶으셨을까요? 다행히도 “건강해라! 형제들끼리 우애 있게 지내라! 공부 열심히 해라!”라고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당신을 잊지 않게 하고 싶으셨던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매일 미사를 봉헌하며 예수님을 기념합니다.
먹는 자리는 평화의 자리이고 나눔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몸”이라고 하시고, 포도주를 “피”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살과 피가 되는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먹습니다. 미사는 우리를 주님과 하나가 되게 합니다.
오늘 이 밤은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려고 했던 “유다의 밤”이 아닙니다. 최후의 만찬이 일어난 예수님의 “사랑의 밤”입니다. 사랑이 충만한 밤, 종의 신분을 취하시는 밤입니다. 만찬이 있은 후 하느님의 어린 양은 십자가의 제물로 바치기 전에 제자들에게 삶의 방식을 남겨 주십니다. 우리는 ‘세족례’, ‘발 씻김 예식’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유교적 전통에서 피부를 보여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가려야했습니다. 특히 발을 보여주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이어서 양말을 신던지 아니면 무엇으로라도 가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발을 요구하십니다. 흙과 먼지가 가득한 깨끗하지 못한 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부드러운 그 손, 나의 발에 입맞춤 하시던 그 입술, 그 눈빛, 거기서 느껴지는 사랑이 우리를 뜨겁게 합니다.
예수님은 마치 시한부 생명을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아들로서의 사명을 모두 받아들이시고 하나씩 하나씩 세상의 일을 정리하고 계십니다. 그 무게감에 저항할 수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살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우리도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게 됩니다. 나의 더러운 발, 각질이 있는 발을 씻어주시고 닦아주십니다. 그리고 그 발에 입을 맞추십니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예수님께서 이러시니 힘이 듭니다.
이제 우리에게 당신이 하신 것처럼 하라고 하십니다. 비천하고 겸손된 종의 모습을 갖추고 그 사랑을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다른 형제자매들에게서 발을 닦아주는 것을 받고만 있을 것인가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셨는데 나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하게 됩니다. 항상 모범을 보이시는 예수님이시기에 그래서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극렬하게 보여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13,15)
저를 씻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씻어 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