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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강론

 

 

2020419, 이규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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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사건은 너무나 강렬합니다. 복음을 읽다보면 그 장면들이 영화를 보듯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오늘은 토마스가 등장합니다. 오늘이 토마스 축일인 것처럼 토마스는 무대 한 가운데 서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을 찾아온 마리아에게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하셨고 그 날 저녁 제자들은 부활하셨다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빌라도 관저에서부터 나는 모르오!”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소리에 혼란스럽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들인지 제자들의 머릿속은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은 방을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방입니다. 병사들이 잡으러 올까봐 무서웠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예수님 같은 꼴을 당할까봐 무서웠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던 장면, 영화 <쿼바디스(Quo Vadis,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도 생각납니다. 숨고 도망가기 바쁜 제자들입니다.

 

 

토마스의 신앙고백,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0,28)이 오늘 복음의 정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그 토마스에게는 불신이 있었습니다. 보고 만져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토마스였습니다. 자연과학적인 교육을 받은 우리도 보고 만져보지 않고서는 잘 믿지 않습니다. 그런 근본적인 성향은 토마스와 별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토마스를 소개하면서 쌍둥이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읽을 때면 쌍둥이라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믿음과 불신이라고 하는 쌍둥이가 아니었을까? 동전의 양면이라는 얘기를 자주 할 때가 있습니다. 극과 극인 상태가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함을 얘기합니다.

 

 

성격의 특징을 이야기해보면 부드럽고 따뜻하고 자상하고 등등. 우리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신도 그런 성격을 가지고 싶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다른 면은 우유부단하고 추진력, 박력이 없고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사는 유형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목소리도 크고 독선적이며 주위를 살피기보다 앞만 바라보는 유형들도 장단점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쌍둥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바라보면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은 달라집니다. 나 자신의 눈이 어떠한 상태인지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쌍둥이라고 하면 일란성 쌍둥이를 이야기합니다.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것, 하나가 둘로 나뉘어졌다는 것, 하나같지만 둘이라는 것, 하나이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에 쌍둥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다르기에 다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뒷면에 그 다른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도 쉬는 교우가 되어 살아가는 경우들을 쉽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교회와 사람에게 상처받고 광야에서 떠도는 경우들을 봅니다. 그렇게 열심하던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쌍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쌍둥이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책도 하면서 삽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그 토마스의 의심도, 우리들의 죄와 상처들도 하느님의 자비로 치유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주일이 되길 빕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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