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3 부활 제2주간 목요일 강론 / 김동희 모이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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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목요일 강론
2020년 4월 23일, 김동희 모이세 신부
오늘 복음은 “땅에서 난 사람”과 “위에서/하늘에서 오시는 분”을 반복해서 대립시키며 그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위에서/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곧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인데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하느님께로부터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말하고 증언합니다.”
어제 복음의 주제어는 ‘빛’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빛이십니다. 사람들은 보통 빛이 무언가를 환히 비추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종합건강검진을 하러 가면 꼭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안압검사’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면 살짝 바람이 부는 듯하면서 번쩍 빛이 비칩니다. 순간 앞이 뿌옇고 캄캄해지는 가운데 둥그런 빛의 잔영이 남습니다. 눈은 멍해집니다.
강력한 빛은 이렇듯 눈을 멀게 하기도 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은 땅에 속하고 땅의 것을 말하는 우리들의 눈을 순식간에 고장나게 하기도 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마스쿠스를 향해 가던 사울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주님께서 보내주신 아나니아스를 만나 다시금 눈뜨게 되는데, 이전에 자신이 보고 알고 하던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더 이상 그 이전 세계인 유다교에 속하는 박해자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열렬한 증인, 주님께서 신비롭게 마련하신 위대한 사도 바오로로 변모합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베드로와 사도들 역시 그러합니다. 그들도 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수난하러 가시는 주님의 길을 동행하는 중에도 그들은 누가 제일 높은가를 따졌습니다. 그들은 3년간이나 주님과 동고동락하며 한 데 어울렸지만 여전히 땅에 속했고 땅의 셈법에 따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변화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더 이상은 가르치지 말라’는 최고의회와 대사제 앞에서 그들은 당당하게 말합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더욱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확고하게 증언하였던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되신 하느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수난하신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목숨을 걸고 증언했던 그것이 지금의 우리에겐 교리시간에 배운 이야기, 성서에서 읽은 이야기, 강론을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 상식 중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참 신앙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과거 못지않게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 눈멀고 다시 고쳐 뜬 눈으로 말미암아 더는 이전처럼 살 수 없는 이들이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이제는 땅에만 속하고 땅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없어 그 너머 모든 것을 말하며, 그리고 모든 것 위에 위에 계신 분의 증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들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십니까? 우리 각자가 스스로에게 묻고 살펴야 할 물음입니다. 땅에 속하는 이들은 땅의 행실을 할 것입니다. 수난하고 부활하시는 주님을 본받아 하늘을 바라보고, 이웃의 형제자매들을 그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헌신하는 환대의 사람이 참으로 “위에서/하늘에서 오시는 분”의 제자요 증인입니다.
우리 모두는 땅으로부터 하늘로 오르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스스로를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땅의 논리와 셈법에만 마음 두지 말고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의 소리에 순히 따릅시다. 스스로 여전히 땅에 묶여 있음을 비통하지만 용기 있게 인정하고 고백하는 이들은 하늘로 오르는 두레박에 몸을 실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