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2020년 노동절 담화문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
모두 두려워 문을 닫아걸고 있을 때에도 오염된 세상 한가운데서 온종일 목숨을 걸고 땀 흘리는 이 거룩한 이들은 누구입니까? 다들 잠든 이른 새벽,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 계단을 숨 가쁘게 오르내리다 쓰러진 그 노동자가 마지막으로 짊어졌던 짐은 쌀 포대였다고 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과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자기 목숨을 바친 성찬의 삶입니다. 힘겹게 몰아쉬었을 그 거친 숨결은 가혹한 고용 사회에서 과로에 시달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일상적 호흡이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동력은 비인간적인 삶을 견디며 낮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못에 찢긴 아물지 않은 손으로 숯불을 피워 몸소 제자들의 아침밥을 해 먹이시던 주님께서는, 지금도 당신 지체인 가난한 노동자들의 상처투성이 손을 통하여 우리 모두를 먹여 살리십니다(요한 21,1-14 참조).
세계적 재난 상황에서도 사재기가 벌어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독특한 현실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배송 노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고강도 노동이 분명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이 속한 사회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간추린 사회 교리』, 195항 참조).
비좁은 책상에서 일하며 아픈 가족을 돌보아야 했던 콜센터 노동자의 가슴 아픈 사연은 우리의 슬픈 노동 현실을 일깨워 줍니다. 콜센터는 옛날의 공장과 똑같고, 변하지 않은 것은 낮은 임금과 그들의 사회적 지위뿐이라는 어느 여성 노동자의 통찰은 아리도록 날카롭습니다. 50년 전 청계천 평화 시장의 그 열악한 노동 환경이 이 시대에는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훨씬 더 교묘한 방식으로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생태 위기와 재난이 닥칠 때마다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하루의 노동으로 하루를 살아 내는 일용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와 농어민, 외국인 노동자들이 지금 심각한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노동과 일자리는 인간 존엄의 근본 토대라고 거듭 강조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어느 때보다 에누리 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 가정의 생계와 한 가족의 생존을 짊어진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우리 사회가 지켜 내고 우리 교회가 품어 안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람을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는 폐기의 문화야말로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집단 감염원임을 기억합시다.
국가 위기 때마다 되풀이되는 구호는 ‘고통 분담’이지만, 그 고통을 ‘전담’하는 것은 언제나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가난한 노동자들의 몫이었습니다. 힘없는 노동자의 희생으로 경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야만적 자본의 논리는 지금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경제 독재이고 새로운 우상입니다(「복음의 기쁨」, 55항 참조).
비정규직 노동자와 장애인, 농민과 여성을 외면한 노동 운동은 무자비한 자본 권력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절박한 위기 상황이 도리어 집단 이기주의를 벗어나 공공성과 공적 가치를 강화하는 노동자들의 참된 연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머니 교회는 언제나 가난하고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연대합니다. 목수의 아들이신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시어 이 세상 노동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고 계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2020년 5월 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배기현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