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 - 성소주일 강론
2020년 5월 3일, 김동희 모이세 신부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의 증진을 위해 기도합시다.
1. 성소주일
부활 제4주일은 ‘성소주일’입니다. ‘성소’(聖召)란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뜻하는데, 우리 가톨릭교회는 사제·수도 성소 외에 혼인하여 가정을 꾸리는 것도 하나의 성소(결혼성소)로 봅니다. 한때는 ‘착한목자 주일’로도 불렸는데 사제성소에만 치우친 감이 있었는지 기존의 ‘성소주일’로 이름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성소주일은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의 증진을 위해 교회 구성원 전체가 관심을 갖고 기도하도록 제정된 날입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원인을 갖는 것이지만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만혼(晩婚)과 혼인 기피의 풍조, 저출산, 유아세례 기피 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조만간 무엇보다 우선해서 혼인성소를 위해 온 교회가 기도하는 주일도 제정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꼭 그런 주일이 제정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2. 선교하는 교구 의정부교구!
우리 의정부교구는 국내 어느 교구보다도 많은 선교 사제를 외국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일본의 삿포로와 요코하마 교구에서, 그리고 멀리는 페루의 트루히요 교구와 아프리카 잠비아의 솔웨지 교구에서까지 약 10명의 교구 사제들이 선교사로 열심히 사목하고 있습니다.
5년 전 안식년을 지내며 페루와 잠비아를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구불구불 깎아지른 비포장 벼랑길을 4시간 넘게 달려 안데스 산맥 3,300 미터 고지에 다다르니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그곳에서 동창신부가 선교하고 있었습니다. 바람과 햇볕에 그을린 그의 얼굴에선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잠비아의 오지에서는 후배 신부가 돌팔이 의사 노릇을 하며 주민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새까맣지만 아주 귀여운 맨발의 소녀들이 돌부리를 걷어 차 발톱이 깨지고 들려 새빨간 피를 흘리며 고생하다가도 주일 미사에는 그동안 아껴두었던 운동화를 신고 해말게 웃으며 성당에 나타났지요. 그들과 함께 아름다운 화음으로 성가를 부르고 살짝살짝 어깨와 궁둥이를 움직여 춤도 추며 미사를 봉헌했던 순간들이 꿈결처럼 흔들거리며 다가오네요.
3. 수도자는 우리교회의 ‘생명’입니다.
과거에 한동안은 수도자를 ‘성직자-수도자-평신도’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형태의 교회구조 안에서 중간 신원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수도자는 교회 내의 하나의 신분이기보다는 교회의 ‘본질’이요 ‘생명’ 그 자체입니다. 우리 본당의 주보성인인 소화 데레사 성녀는 “저는 이 교회에서 심장이 되고 싶어요.” 하셨는데, 이 말만큼 수도자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주는 표현은 없는 듯합니다. 사고하고 판단하는 머리와 분주히 움직이는 손과 발이 중요해 보이지만 거기에 피를 공급해주는 심장의 박동이 없다면 모두 무용지물입니다.
수도자는 현세에서 이미 하느님과 깊이 결합되어 천국의 사랑을 맛보며 증거하는 이들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샘에서 부단히 은총과 사랑을 길어내 세상에 보내주는 여울 소리가 그들에게서 들리지요. 그런데 그런 수도자들의 수가 현저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깊이 맛들인 그런 존재들의 비추임이 없다면 누가 희생하고 봉사하려 할까요? 제의방의 복사들을 격려해서 사제로 키워내고, 그 사제들이 사랑과 열정에 불타 이역만리 타국에 선교사로 나서게 한 배후에는 수많은 수도자들이 땀방울과 기도가 있습니다. 수도 성소를 위해 힘껏 기도합시다.
4. “양들의 목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홀로 양들의 목자이시지만, 그 주님께서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들을 불러 사제로 세우시며 당신의 그 중차대한 임무를 맡기십니다. 당신의 모범을 따라 양들을 하나하나 잘 알고, 스스로 앞장서가며 양들이 뒤따르게 하라는 소명이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사제들에게 “양 냄새가 나는 목자가 되십시오.”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양들을 찾아가고, 양들을 알고, 양들과 벗하기에 양 냄새가 나는 그런 사제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시는 거지요. 코로나19가 점차 잦아들면서 신자분들을 뵐 기회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마두동에 새로 부임한 저희 네 명의 사제들 그리고 우리 본당의 신학과 2학년 박준형 프란치스코 신학생이 양 냄새가 나는 그런 사제가 될 수 있도록 꼭 기도해 주십시오. 저희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밥은 조금만 사주셔도 됩니다. 많이많이 기도해주셔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