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7 부활 제6주일 강론 / 김동희 모이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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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일 강론
2020년 5월 17일, 김동희 모이세 신부
1.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얼마 전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유년시절을 그린 영화 ‘저 산 너머’를 보았습니다. 아역 배우들이 대구 사투리를 써가며 얼마나 연기를 실감나게 잘하는지 눈물 좀 흘렸습니다. 형 동환과 동생 수환, 두 형제는 가난하고 병약한 아버지보다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보따리 장사를 하며 집안을 돌보는 강인하면서도 자식들에게 한없이 따뜻한 어머니에게 더욱 각별한 애정을 보입니다. 그 어머니가 결국 두 형제의 마음속에 천주님의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불씨를 지핀 것이지요. 먼저 형 동환이 신학교에 들어가고, 영화 말미에는 동생 수환 역시 사제가 되기 위해 ‘저 산 너머’ 산을 넘고 넘어 달음박질해 갑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좋아했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2주 연속 제 부모님 이야기를 드리게 되네요. 사람 좋기로 소문났지만 정작 가족들에게는 엄한 편이었고 가족 경제도 든든하게 밑받침해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어린 저에게 상당히 못마땅했었나 봅니다. 반면에 어려운 살림 가운데 ‘또순이’로 사시며 엄한 아버지 옆에서 저희 자식들의 피신처요 울타리가 되어준 어머니가 제게는 ”하늘만큼 땅만큼이나“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무엇인가를 하라 하면 기쁘게 했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하라’하거나 ‘하자’하는 것은 신명나게 했던 편입니다. 커다란 쌀자루에 여성화(샌들, 하이힐 등)를 50족씩 담아 버스를 타고 도봉시장 화양시장 등에 납품하러 함께 다니곤 하였지요. 어머니는 머리에 이고, 저는 어깨에 메고 나란히 걸었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맞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란 참 쉽고, 심지어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좋아하려면 그가 왜 좋은지도 알고, 또 그의 좋은 것을 맛들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2. 다른 보호자, 진리의 영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주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그리스어 ‘파라클리토스’라 하는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지요.
‘파라클리토스’란 ‘보호자, 협조자, 위로자, 변호자, 중개자’ 등 다양하게 번역되는데 본래는 ‘곁으로’(파라) ‘불리운 이’(클리토스)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떠나시면서 그 빈자리와 시간 동안 우리 곁에서 함께해주실 분을 청하여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그 성령을 오늘 복음에서는 ‘다른 보호자’,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십니다. ‘보호자’라는 말, 어디서 많이 들으셨나요? 병원에서지요. 곁을 지키는 사람, 돌보아주는 사람, 어느 경우에는 환자 자신보다도 더 불안해하며 기도하고, 환자를 대신해서 의사와 간호사의 이야기도 듣고, 또 병원비도 내고 퇴원수속도 밟는 이가 바로 ‘보호자’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다른 보호자’라고 하시면 그 이전에 이미 ‘보호자’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오신 우리의 보호자 하느님이십니다. 그런 당신이 제자들 곁을 떠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의 길로 가셔야 하기에 ‘다른 보호자’를 약속하십니다. 다르긴 하지만 그분 역시 예수님과 똑같은 우리의 ‘보호자’ 하느님이십니다.
또 예수님은 성령을 가리켜 ‘진리의 영’이라고도 하셨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이루 헤아릴 수 없어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그분과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진리의 영인 성령께서 우리를 비추어 예수님의 구원 신비를 알게 해주십니다. 예수님께로 우리를 슬며시 등 떠밀어 예수님과 친밀한 이가 되게 합니다. 세상의 온갖 피조물과 이웃 안에서 기쁘게 사랑하는 친절한 형제요 벗으로 살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부활시기의 거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의 오심을 함께 청하십시다.
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또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하느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바르게 생각하고
언제나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