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2020년 6월 7일, 김동희 모이세 신부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사랑!
오늘은 삼위일체 신비를 기리는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께서 같은 본성과 실체를 가지신 한 분 하느님이심을 뜻하는 말로서,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위격(位格)은 인격(人格)이란 말과 비슷합니다. 인격이 산 사람에게 사용된다면 위격은 영혼에 적용하는 한자말(漢字語)입니다. 이 대축일의 기원은 4세기 초입니다. 교회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아리우스 이단을 물리친 뒤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354-430)이 어느 날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하여 묵상하며 백사장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어린아이가 모래성을 쌓고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열심히 퍼 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아이와, 삼위일체 하느님을 머리로 이해하겠다는 나 자신 가운데 누가 더 멍청한 자인가?” 하고 자문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삼위일체의 신비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겠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교리는 단순합니다. 막연함만으로 다가가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느님에 대해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무작정 덮어 두는 것도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어떤 이론적인 사색에서 나온 정의이기보다는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을 경험한 사람들의 체험에서 고백된 교리입니다. 즉, 하느님과 예수님, 성령 안에서 하느님을 본 사람들의 체험입니다.
4세기 초에 이르러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끝나고 그리스도교회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신앙의 내용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이 요청됩니다.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아리우스 이단이 돋아납니다. 사제 아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이 이단은 이성적인 논리를 내세워 하느님은 한 분이라며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주장을 펴게 됩니다.
1) 먼저, 성자의 신성을 부정합니다. 핵심 주장은 “성자가 없었던 때가 있었다.”는 표현입니다. 곧 성자가 피조물이라는 주장이지요.
2) 이어서 성령은 한 분 하느님에게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한 결과입니다.
3) 이에 대해 교회는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성자)는 참 하느님이며 동시에 참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나신 분이요 그러기에 그분에게서도 사랑의 성령이 함께 나오신다, 발하신다고 선언한 것이지요.
처음부터 부모님을 완벽하게 아는 자녀는 없습니다. 나이 들면서 조금씩 알게 됩니다. 혼인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다 보면 비로소 부모의 심정을 깨치게 된다고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을 알게 되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알 수는 없습니다. 세례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깨달아지는 것이 법입니다. 자신의 잘못이 많은데도 끊임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총을 통해 그분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깨달음에는 지식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 이론이 필요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분들이 어떻게 사셨고 ‘어떻게 대해 주셨는지’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삼위일체는 이론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존재 모습’을 표현한 용어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 안에서 묵상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완벽한 일치로 계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사랑과 일치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점차 이 신비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 가르침을 우리도 가정 안에서,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웃들 안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대축일의 교훈입니다. 최남순 수녀님의 시, <동그라미 기도>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
성삼위가 사랑으로
한 분이시듯
나와 내가 하나 되고
너와 내가 하나 되어
사랑으로 우리가 되고
우리 민족 공동체와
온 세상 인류 공동체가
사랑으로 하나 되고
우주 안에
사람들과 대 자연이
창조주 안에 하나 되길
초록의 마음으로
진붉은 동그라미 기도를
수없이 그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