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화요일
마태 7,6.12-14
이규섭 스테파노
찬미 예수님.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라고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모두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입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러려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건강도 챙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반대로 남에게 해주라고 하십니다. 말도 안 되고 손해가 나는 일입니다. 그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하십니다.
시킬 수 있는 자리에서 권한을 가지고 시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소위 ‘명령’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시키는 일이든 명령을 하는 일이든 소통이 필요합니다. 부당함을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가 노력해서 얻어야 할 것입니다. 남에게서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서 얻으려는 상황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것은 강도나 사기꾼이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접근하지 말고 오히려 반대로 내가 원하는 것에 관심을 갖지 말고 남이 바라는 것에 관심을 갖고 이루어주라고 하십니다.
정리를 해서 다시 말한다면 “사랑”입니다. 사랑은 먼저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에 빚진 사람입니다. 생명을 가지는 순간부터 내가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기에 빚진 것입니다. 사람으로 꼴을 갖추기까지 많은 관심과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진채 살아가게 됩니다.
저도 후배 신부님들과 같이 살아가다 보면 여러 성격의 신부님들을 보게 됩니다. 주임신부로서 시키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항상 긍정적인 상황을 맞이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모두 다 한다고 해서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해야 하고 또 교육을 시켜야할 책무도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야 잘 시킬 수 있습니다. 인격을 존중해야 하고 권한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바탕 아래에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습니다.
개들이 바라는 것을 개들에게 주어야 하고, 돼지들이 바라는 것을 돼지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찾는 방법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은 따뜻한 마음의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형제자매들을 바라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