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금요일 강론
2020년 6월 26일, 김동희 모이세 신부
“그리스도 우리의 병고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 짊어지셨네.” (화답송)
오늘 복음은 나병 환자의 치유 이야기를 전한다. 새 번역 성경은 과거 ‘문둥병/문둥병자’라 지칭하던 것을 ‘악성 피부병/나병 환자’로 바꾸어 표현한다. 나병 환자와 연관된 율법 규정은 레위기 13장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악성 피부병에 걸린 병자는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푼다. 그리고 콧수염을 가리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친다. 병이 남아 있는 한 그는 부정하다. 그는 부정한 사람이므로, 진영 밖에 자리를 잡고 혼자 살아야 한다.” (45-46절)
사제에게서 악성 피부병으로 진단 받으면 그는 스스로를 ‘부정한 사람’으로 선언하고 사람들의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진영 밖에 나가 혼자 살아야 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법이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한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법의 한계, 그 제한선을 넘어 예수님께 다가간 것이다. 새 사람이 되어 살고픈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예수님은 그를 피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어루만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그의 간절함과 가난함을 그렇게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여라.” 법을 무시하고, 법을 넘어 자신에게 다가온 그를 받아주셨지만 그를 다시금 법 안으로 들여보내신다.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정결한 이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법적 절차를 따르라 하신다. 이렇게 해서 자비는 법을 앞선다. 그러면서 다시금 그 법을 완성한다.
지난 3개월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우리 교회도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중단하였고 주일미사의 의무도 관면하였다. 온라인 미사의 시청, 가정에서의 공소예절, 묵주기도, 희생 등을 통해 대송이 가능하다고 안내하였다. 이 기간 동안 많은 개신교회들이 취한 모습들을 염두에 두고 보면 우리 교회가 취한 조처가 얼마나 파격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금 우리의 법과 도리를 지킬 때가 되었다. 아직도 크게 마음의 불안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교회의 관면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슬그머니 신자로서의 의무와 열성을 내려놓은 분들에게는 교회에 나오시라 초대의 말씀을 드린다.
어제는 병자영성체가 있었다. 다섯 분이 병자영성체를 신청하셨다. 기존에 병자영성체를 하시던 분들 가운데 신청하지 않으신 열다섯 분들은 댁을 찾아가 문 앞에서 묵주기도 1단을 바쳐드리고 돌아왔다. 4개월만의 병자영성체였다. 첫 집을 방문하였을 때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하염없이 우셨다. 매일 평일미사 드리고 영성체하며 수도자처럼 살아왔는데 이런 난리가 생겼다며 울컥해 하셨다. 예절 끝에 성체를 영하시고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시고는 길게 우셨다. 아무도 할머니를 말릴 수 없었다.
사람은 법을 넘어설 수 있고 또 넘어서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형편이 나아진다면 그 법 안으로 다시금 돌아가라는 예수님의 초대를 기억해야 하겠다. 그렇게 사람들 곁으로, 공동체의 품으로 복귀해야겠다. 공동체와 유리되어 신앙을 살아가는 것은 고되고도 슬픈 인고의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