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8 연중 제13주일 강론 / 김동희 모이세 신부

by 김동희신부 posted Jun 28,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연중 제13주일() 강론

 

 

2020628, 김동희 모이세 신부

 

 

 

0628.2.jpg

 

 

유학 시절 초기에 나에게 이탈리어 회화를 가르쳐주시던 젬마 할머니가 웃음을 머금으며 나에게 던졌던 질문이 있다.

 

 

모세야, 네가 아주 자주 쓰는 표현이 있는데 너 그거 알고 있니?”

그래요. 그게 뭔데요?”

모르는 구나. ‘~해야만 한다당위적표현을 네가 많이 사용해.”

 

 

유학 생활을 계속하면서 나는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한국인)의 전반적인 특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사람 여럿을 접촉해본 외국인 동료들이 나에게 귀띔해준 덕분이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 많은규범과 당위의 민족이요 국민이다. 그러기에 버림과 따름이라는 소제목을 지닌 오늘의 복음 말씀은 우리 신자들 대부분에게 아마도 묵직한 중압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인간 삶의 신성한 가치들을 부정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참되고 유일한 가치인 예수님 자신에 비해 부차적이고 종속적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이다.

 

 

모든 계명(imperative)의 배후에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부분(indicative)이 있기 마련이다. 부모와 자녀, 더 나아가 모든 것에 앞서 당신을 사랑하라 명하시는 예수님은 바로 십자가를 지고 가신 분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삶에 있어서 어느 날 뚝 떨어진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아버지 하느님과 그분이 사랑하시는 당신 백성들에 충실하신 그분 삶의 결과이다. 먼저 십자가는 한결같이 당신 백성을 사랑하기 바라시는 아버지의 뜻에 대해 죽기까지 라고 응답하는 책임을 다하는 충실함이다. 또한 십자가는 우리 약하고 허물 많은, 무지와 증오로 눈먼 인류를 죽기까지 용서하시고 품으시는 사랑의 팔 벌림이기도 하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며 먼저 사랑하셨기에,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셨기에 당신을 따르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당신을 다른 무엇보다 더 사랑하라는 것은 당신과 극도로 친밀해지라는 의미인 동시에 당신이 품으셨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기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당신처럼 사랑의 불꽃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을 불러 파견하시는 복음 선포의 맥락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복음 선포는 메시지가 아닌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메신저)의 증거력에 의존한다. 선포자에게서 드러나는 기쁨과 평화, 진실과 겸손, 타인을 향한 개방과 환대, 그리고 성실의 맛과 향기가 함께할 때 복음은 믿고 받아들일 만한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진실되이 자신을 내어주는 그의 모습은 세상에 던지는 무게 있는 도전장이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음 선포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세례 받은 우리 모두가 복음을 선포하는 제자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복음은 복음 선포의 길에서 무엇이 우리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교회의 적지 않은 봉사자들이 가족(부모와 배우자와 자녀)을 핑계로, 또 이제는 자신을 돌봐야겠다며 봉사를 거절하고 있다. 물론 자신과 가족을 먼저 잘 돌보는 일은 필요하고도 중요하다. 하지만 타인과 공동체를 향해서는 자신을 코딱지만큼도 내어주려 하지 않으면서 그가 과연 가족들에게 자신을 내어줄지 의문이다. 자신을 아끼는 이가 쉽게 빠져드는 것은 자기연민의 덫이다. 자신만 상처입고 자신만 희생하며 사는 듯한 착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것을 달콤한 슬픔이라 불렀다. 봉사의 길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기쁨의 길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그 길에서 나를 성장시키시고, 나의 주변에 기쁨과 평화의 향기가 자라게 하신다. 예수님 말씀 그대로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

 

 

김동희 사진.jpg

 


Articles

1 2 3 4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