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성인
소화 데레사 성녀(St. Theresa of infant Jesus)의 축일은 10월 1일이다. 성녀는 24살의 젊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 어떤 사람 보다도 많은 감동을 남겨주었다. 또 프랑스에서 태어나서 그 나라에서 사망했지만 전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공경을 받고 있는 성녀이다. 성인품에 오를 때에도 성녀처럼 단시일 내에 시성된 일도 별로 없다. 그러면 성녀의 생애는 어떠했기에 이렇게 특별한 삶을 살았을까? 그리고 왜 성녀에게 '소화'(小花, 작은꽃) 혹은 '아기 예수'(infant Jesus)라는 다른 이름이 따라다닐까?
성녀는 1873년 프랑스의 아란손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신심이 깊은 부모 밑에서 9명중 막내로 자라면서 경건한 삶과 겸손함을 양친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당시의 모든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였다. 아홉 살 때 중병에 걸려 위독하게 되었으나 성모 마리아의 전구하심으로 치유되는 경험을 한다.
그 후 데레사는 15세 때에 리주에 있는 갈멜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은 원의를 갖게 되지만, 너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승낙을 얻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아버지와 함께 로마로 성지순례를 가게 되자, 교황님께 직접 갈멜 수녀원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하게 된다. 교황님의 허락으로 수녀원 관할 주교의 허락을 받아낸 성녀는 1888년 4월 9일 갈멜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데레사의 언니 세 명이 이미 수녀원에 들어가 있었기에, 네 번째로 성녀의 아버지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어린 딸과 헤어지는 인간적인 슬픔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데레사는 어린 나이에 출가를 해서 불굴의 노력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성녀가 되어 아버지의 희생을 값지게 해 주었다.
성녀의 삶은 한 마디로 작은 꽃송이처럼 아름다웠다. 그것도 세상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 꽃이 아니라 숨은 꽃처럼 살았다. 왜냐하면 데레사가 기꺼이 했던 고행과 거룩한 희생에 대해서는 오직 하느님만이 잘 아실 정도로 숨겨진 삶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녀와 함께 살았던 수녀원장이나 동료 수녀들도 오랫동안 몰랐다. 그들이 성녀의 훌륭한 성덕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데레사는 어린 아이와 같이 완전한 순명을 배우기 위해서 온갖 노력과 희생을 다하였다. 수도자는 복음 삼덕인 청빈, 정결, 순명 서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청빈과 정결은 공동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룩할 수 있지만 순명은 내적인 문제이므로 참으로 어려운 덕행이다. 수도자가 수도원 장상의 지시에 겉으로는 잘 따를지라도, 인간 내면 속에서 우러나오는 참다운 순명이 아니면 그것은 덕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녀는 이 덕행을 배우기 위해서 어떠한 천한 일이라도 즐겨하고 자기를 완전히 이기는 덕을 닦기에 전념을 다했다. 성녀는 어릴 때부터 몸이 매우 약했다. 그래서 수녀원에서 해야하는 순명의 삶을 살기에 다른 동료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데레사가 얼마나 고생을 하였고, 또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신다. 데레사의 삶은 그러나 자신의 영혼구원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의 영혼을 구하려는 영혼을 갖고 있었다. 성녀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전교 지방에 가있는 신부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데레사는 중병으로 앓아누워 있으면서도 전교지방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서 고통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자신의 삶을 마감하였다. 그래서 교황님은 성녀를 전세계의 신학교화 선교회의 주보성인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성녀는 1897년 9월 30일에 선종하고, 1923년에 복자품에, 1925년에 영광스러운 성인품에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