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 재의 수요일 강론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2020226, 김동희 신부

 

church-535155.jpg

 

 

마두동성당 교우 여러분, 코로나 19의 맹위 속에서도 새로운 날이 밝았습니다. 김동희 모이세 신부입니다.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갈라놓는 병마의 심각한 확산을 막기 위해 우리 교회는 사상 초유의 미사 중단이라는 처방을 통해 온 국민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렇게 강론을 통해서라도 신자 여러분과 연결되고 만날 수 있음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사순시기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

오늘부터 우리들은 예수님의 부활대축일을 준비하며 회개와 보속의 사순시기를 시작합니다. 첫째 날인 오늘을 재의 수요일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 시기를 거쳐 부활하시는 그리스도를 닮은 이로 변화되도록 참회를 권고하며 사제가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거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재를 얹으며 사제가 들려주는 말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바로 내가, 본시 흙이요 먼지에 불과함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불어 넣어주시는 숨결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면서도, 세상과 이웃들 모두가 나를 중심으로 돌며 움직여주기를 바랐던, 그래서 실상은 자기 자신을 하느님인 양 내세우며 살았던 그 헛똑똑이, 허깨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초대라 하겠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재의 예식 때 사제가 들려주는 또 다른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말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 하느님, 그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믿고, 살려면 회개하라 하시는 것이지요. 회개는 다시금 하느님을 찾고, 그분과 그분의 뜻에로 부단히 돌아서는 참된 신앙의 행위입니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좋은 일, 의로운 일을 행할 때조차도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과 칭찬을 취하려는 자기중심성’, 자기숭배가 자리함을 보라 하십니다. 눈앞의 사람들만 보지 말고, 하느님을 의식하라 일깨우십니다.

 

 

이어서 의롭고 좋은 일들 가운데 대표 격인 자선, 기도, 단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좋은 일들 가운데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려하는 허영과 위선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거짓된 것들이 들어 있으니 집어 치워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좋은 것들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도록 새롭게 가르쳐 주십니다. 자선, 기도, 단식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표현은 이것입니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하느님은 숨은 일도 보시는분입니다. 그분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두려운 처벌자가 아닌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들이 서로 주고받는 거짓과 죄로 인한 아픔과 상처들을 안타까워하시며 고통당하시는 분이십니다. ‘신 앞에 솔직히!’ 이 말은 다른 어느 때보다 사순시기에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나의 심부와 내 삶의 주변에서 피어나고 있는 어두움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은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 작용하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표시입니다.

 

 

그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갚아주십니다. 나의 양심을 순히 하여 나의 죄와 그것들이 빚어내는 파괴와 아픈 실상들을 뉘우치며 인정할 때 우리 양심은 빛 속에 머물고(양심의 확실성), 그 마음이 깨끗한 이는 자비하신 하느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구속의 확실성: 마태 5,8 참조)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사순시기는 은혜로운 회개의 때요 동시에 구원의 시간입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화해할 때 하느님은 내 안에 사시고, 나 역시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비로소 내가 나답게 살 수 있고, 이웃과 세상의 피조물들을 들볶고 닦달하지 않고, 기쁘게 더불고 돌보며 살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깊이 탄식하시며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피조물들은 나와 우리가 참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고통 받고 수고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중단 없이 기도하며, 회개와 화해의 시간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떠나십시다. 신자 여러분, 모두 건강하셔야 합니다.

김동희신부.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