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0 부활 제5주일 강론 / 김동희 모이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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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강론
2020년 5월 10일, 김동희 모이세 신부
1. 초대교회라고 해서 100% 이상적인 공동체는 아니었다.
오늘 제1독서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자신의 가진 것을 모두 사도들 앞에 가지고 와서 바치고, 아무도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지 않았기에 그들 가운데에는 부유한 이도 가난한 이도 없더라는 이야기와는 달리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초대교회 안에서도 부정적인 모습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매일 매일의 필요한 것을 배급 받는 것과 관련하여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만을 터트린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도 신라 시대의 골품제, 즉 성골(왕족), 진골(왕족+귀족), 육두품(귀족) 같은 신분 의식이 자리했나 봅니다. 본토 유다인들은 성골, 그리스계 곧 이방계 유다인들은 진골쯤 된다고 보면 되겠지요. 그러니까 진골 유다인들이 성골 유다인들에 대해 무언가 푸대접을 받는 느낌을 불만으로 토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칭송되는 초대교회 때에도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 한편으론 의아하면서도 웃음을 머금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는 본시 천국도 아니고 그 구성원인 우리들도 천사들이 아닙니다. 교회는 부족한 사람들,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약점을 끊임없이 고백하며 새롭게 되기를, 새 삶을 살 수 있기를 갈망하는 그러한 교회입니다. 냉담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분들이 교회에서 실망과 상처를 겪은 이들입니다. “교회가 뭐 그 따위냐?”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본래 약점 투성이의 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중학교 1,2학년 시절 저의 집은 자그마한 여성화를 만드는 구두공장을 했었습니다. 당시는 경기가 좋은 편이어서 몇 달치 선금을 주어야만 직원들을 구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은 야반도주하기 일쑤였고 공장에 화재도 겹쳐 저희 집은 폭삭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실망하여 매일의 삶을 술에 의지하였고 가족 모두를 모아놓고 함께 죽자며 눈물을 흘리곤 하셨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온가족이 굶어 죽을 수는 없다며 어느 날 근처 도깨비시장 다리 위에 좌판을 차리셨습니다. 온갖 나물을 데치고 손질해서 먹기 좋게 만들어 적당한 크기의 덩어리로 만들어 파셨지요. 그런 어머니를 보시고 아버지는 용기를 얻으셨는지직장을 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때 성당 반장집 아저씨가 사우디에서 돌아와 아버지에게 같이 페인트 도장공으로 사우디에 나가자고 제안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렵게 빚을 내어 소개비 명목으로 일백만 원을 드리고 이력서 제출, 작업복 마련, 기술 습득 등으로 들뜨고 바쁜 시간을 보내었지요. 그런데 구세주인 줄 알았던 그 성당 반장집도 야반도주를 해버렸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였지만 세상이 얼마나 가혹할 수 있는지를 깊이 배웠지요. 기대에 부풀었던 아버지의 좌절과 분노는 상상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성당에 나가지 않으셨고 긴 냉담의 길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신앙의 끈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저희 자녀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주셨기에 둘째 아들인 제가 사제가 될 수도 있었지요. 아버지는 제가 일반대학 2년을 마치고 군대 입대해서 훈련소에서 “아버지 이제 그만 노여움 풀고 성당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편지를 드렸더니 냉담을 풀고 성당에 나가셨지요. “둘째 아들, 고생하는 아들이 모처럼 하는 부탁인데 거절할 수가 없지요. 지난주부터 성당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맘 편히 몸 건강히 훈련 잘 받으세요.” 저희 아버지는 지금 매일을 성인처럼 거룩하고 따스하게 살고 계십니다.
2. 예수는 좋은데 그리스도교는 싫다?
“예수는 좋은데 그리스도교는 싫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를 비롯해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는 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조심스럽게 이는 예수님을 오해하는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이 부족한 공동체를 만드시고 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아무런 연결도 없이 거룩한 길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허물과 약점 투성이의 교회를 통하여 우리를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에로 이끌어 가십니다. 이 ‘거지같은 교회’가 없다면 우리는 어느 곳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경축할 것이며, 또 뉘라서 하느님께 합당한 예배를 바치겠습니까? 하여튼 우리는 이 ‘개떡 같은 교회’ 안에서 서로 지지고 볶고 울고 웃고 하면서 변화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3.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말썽 때문에 제1독서는 교회 안에 여러 봉사직들이 생겨나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 교회 안에서 사도들이 모든 것을 다 맡아서 처리할 수도 없으며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사도들은 자신의 본분(기도와 선교)에 충실하기로 하고 공동체 안에서 인간적으로는 “평판이 좋고”, 신앙적으로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교회의 살림살이 전반을 맡깁니다.
더 나아가, 오늘의 제2독서는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아무 책임도 맡지 않은 채 감 나라, 대추 나라 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자신의 몫을 찾아 봉사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입었다고 고백한다면 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봉사하면서 성장합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하느님과 이웃에게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봉사의 길에서 우리가 배워 얻은 힘과 빛은 우리의 가정과 이웃을 통해 세상 속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코로나19의 힘겨운 상황 속에서 미사 재개가 이루어졌습니다. 필요한 곳에서 묵묵히 수고해주시는 우리 마두동 본당의 모든 봉사자들께 허리 숙여 큰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