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1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강론 / 김동희 모이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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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강론
2020년 6월 11일, 김동희 모이세 신부
오늘은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성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사도’라 불린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만민의 사도’로 따로 소명을 받은 것이다. 사도인데 ‘기념일’로 지낸다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우리 교회의 축일 등급은 ‘대축일 – 축일- 기념일’로 구분된다. 사도들은 대개 대축일과 축일을 지낼 터인데 바르나바 사도는 ‘기념일’이란다. 보편교회 안에서 다른 사도들만큼 공경을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을 대축일로 지내고 싶다. 사실 바르나바 사도는 나의 ‘롤 모델’ 가운데 한 분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얼마 전 강론에도 적었었다. 위대한 사도 바오로는 바르나바라는 후견인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도 잘 나와 있듯이, 바오로에게 있어 바르나바는 그 이름의 뜻 그대로 정녕 ‘위로의 아들’이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둘 생각으로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바오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사흘 동안 눈이 멀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마스쿠스에서 하나니아스를 만나 눈을 뜨고 회심하여,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회심만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바오로는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배신자로 낙인 찍혔고, 그리스도인들로부터는 아직 ‘그리스도교의 박해자’란 두려운 오명을 벗지 못하였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바오로의 고향 타르수스로 그를 찾아온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바르나바다. 바르나바는 바오로를 안티오키아 공동체로 데려가 함께 사목하였고, 그곳에서 바오로는 예언자와 교사로서 일하다가 훗날 만민의 사도로 안수를 받고 죽기까지 전도여행에 나서게 된다.
바르나바 하면 언젠가 청년성서모임 연수 중에 보았던 “타인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기대하시는 모습으로 바라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있는 그대로를 넘어서 희망의 시선으로 다른 이를 바라보는 이가 다름 아닌 바르나바라 여겨진다. 그러기에 사람들의 근심어린 시선, 두런거리는 불안감을 무릅쓴 채로 바오로에게 곁을 내주었을 것이다.
며칠 전 전남 강진에서 청소년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 수녀님으로부터 카톡 문자와 사진을 하나 받았다. 어렵게 대안학교를 운영 중인데 코로나19로 인해 경영 사정이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다음날에 도 교육위원장을 만나 조례 개정을 통해 대안학교 교사들에 대한 임금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요청할 계획이라며 기도를 부탁한다고 하는 것이 문자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리고 사진에는 손 편지 곁에 비타민 드링크제가 놓여 있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오늘은 정말 힘든 하루였어요. 코로나 19가 아이들을 모두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 같아요. 자해하는 아이, 담배를 다시 시작한 아이, 수업시간에 답답하다며 학교 밖으로 나가는 아이, 친구에게 심한 욕까지… 정말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어요. 그런데 답답해서 2교시부터 학교 밖으로 나가길 원하는 학생에게 나갔다 오라고 했었는데 (얼마나 답답하면 저럴까 하며 사실 그 아이를 믿었어요.) 아이가 사감실로 들고 온 음료수와 손 편지로 하루의 피로가 풀리면서 눈물이 났어요. 하느님, 이 아이들 사랑 덕분에 제가 살아갑니다. ^^”
강론 상단에 첨부한 사진 속의 손 편지에서 보듯, 사람은 신뢰와 사랑, 위로와 격려를 먹고 자란다. 그것은 일방의 사랑이 아닌 쌍방 교환의 과정, 동반 성숙의 여정일 것이다. 바오로 사도와 더불어 바르나바 사도 역시 행복했을 것이다. 나도 바르나바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