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4 성체성혈 대축일 강론 / 김동희 모이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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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혈 대축일 강론
2020년 6월 14일, 김동희 모이세 신부
“나 밥 안 먹어!”
아이들이 부모에게 자신들의 요구하는 바를 얻어내기 위해 가장 자주, 그리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은 바로 이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특히 엄마는 이러한 아이의 ‘밥 안 먹기’ 투쟁에 쉽게 굴복합니다. 먹이고 돌보는 것이 부모의 본성이요 또 부모라는 이름에 오래도록 새겨진 역사적 DNA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3남 1녀 중에 둘째인데, 저희 형제들 가운데 “나 밥 안 먹어!”를 가장 강력하게 사용한 사람은 셋째인 남동생이었습니다. 밥은 먹기 싫으니 빵과 우유를 사달라고 조른 것이지요. 어머니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며 보채는 동생을 나 몰라라 하기도 하고, 등짝을 후려치며 그냥 밥 먹으라고 야단을 쳐보기도 하였지만 남동생이 정말 아무것도 안 먹고 버티면 결국에는 빵과 우유를 사다 바치곤 하였습니다. 가난하던 시절, 사남매를 키워야 하는데 혼자 밥이 아닌 빵과 우유를 먹겠다고 버텼던 그 뚝심 좋은 셋째는 덕분에 모두가 170cm 이하인 저희 가족들 가운데 홀로 175cm 장신에, 마음씨 좋은 오십 중반의 아재가 되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데 형제들 가운데 조금은 벌이가 괜찮은 편이라 부모님께도 잘하고 형제들 사이에서도 넉넉하게 베풀며 살지요.
저의 키는 168cm였는데, 지금은 좀 쪼그라들어서 167cm입니다. 거의 중학교 3학년 때 키 그대로입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는 한창 클 때라서 그랬는지 밥이 무척 땡겼습니다. 어느 날은 점심때를 조금 넘겨 들어와 어머니께 밥을 달라 하였습니다. 한 공기, 두 공기, 그리고 다섯 번째 공기를 어머니께 받아들다가 저는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수심이 가득해 보이는 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사실이 그랬는지 저 혼자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남매나 되는데 이렇게 아귀같이 먹는 아이들을 무슨 수로 키울까?” 하는 어머니의 혼잣말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날 저는 철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먹고 싶은 대로 맘껏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그런 일이 없었다면 신자 여러분은 180cm의 훤칠한 모이세 신부를 볼 수 있었겠지요.)
어머니가 밥을 퍼 주시면서 그만 먹으라 하신 것도 아니고 무슨 눈치를 주신 것도 아니었는데, 그만 먹게 되었습니다. 연신 밥공기를 채워주시던 어머니의 속마음 같은 것이 그냥 제 속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얼마든지 다 주고 싶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줄 수 없는 가난한 마음이었겠지요.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끄시던 중에 척박한 광야에서 백성이 울부짖자 바위틈의 샘물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로 그들을 먹이시고 돌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되자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주셨는데, 발을 씻어주신 후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라며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송두리째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 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그 제자들 가운데에는 당신을 팔아넘길 유다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제자들에게, 어느 누구도 제외하시지 않고 모든 이를 위해 당신의 몸과 피를 다 주셨습니다. “이것을 받아 먹고 나의 마음을 알아다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시는 것이지요.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 받지 못해서 마음이 옹색하고 가난한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한 세상에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주어야 합니다. 성체 야무지게 잘 영하시고, 그 사랑의 성사가 나를 넉넉하게 하고, 우리 가족들에게, 이웃들에게, 세상 곳곳에 흘러들게 하십시다. 아멘.